464. 잘못된 ‘중산층 비교 기준’ - 신중섭

얼마 전에 지인으로부터 ‘각국의 중산층 기준’이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이  이메일에는 다음과 같은 각국의 중산층 기준이 적혀 있었다. 이와 유사한 신문 기사를 본 적도 있다. ■ 한국의 중산층 기준 (직장인 대상 설문 결과)     1.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2.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3. 자동차는 2,000CC급 중형차 소유     4. 예금액 잔고 1억 원 이상 보유         5. 해외여행 1년에 한 차례 이상 다닐 것 ■ 프랑스의 중산층 기준 (퐁피두 대통령이 ‘삶의 질’에서 정한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        1.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고     2.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하고     3.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며       4. 남들과는 다른 맛을 내는 요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하고     5. ‘공분’에 의연히 참여할 것   6.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것 ■ 영국의 중산층 기준 (옥스포드대에서 제시한 중산층의 기준)     1. 페어플레이를 할 것   2.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3.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4.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5.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 ■ 미국의 중산층 기준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중산층의 기준)     1.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2. 사회적인 약자를 도와야 하며       3.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는 것     4. 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놓여있을 것   우리나라의 중산층의 기준은 다른 나라의 중산층의 기준과 비교하면 소유 또는 물질 지향적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우리는 주로 경제적 능력과 관계가 있고, 다른 선진국은 정신적인 부분과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산층에 대한 일반적인 기준은 다음과 같다.   OECD의 기준에 따르면 중산층은 전체 가구를 소득순으로 나열했을 때, 가운데에 놓이는 소득액의 50∼150%의 소득을 얻는 가구를 말한다. 가계 소득이 중위 소득액의 50% 미만이면 빈곤층이고, 150% 이상은 상류층이다. 우리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3분기 가계 동향’에 따르면 2014년 2인 이상 가구의 연간 가계소득 중간값은 3,921만 원이다. 중산층은 교육의 기회를 누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이다. 한국은 산업화 과정을 통해 안정적인 사회 발전을 주도하는 중산층을 형성하였다.   OECD의 중산층의 기준에서 볼 때, 위에 열거한 프랑스ㆍ영국ㆍ미국의 중산층 기준은 전혀 중산층의 기준이 아니다. 이들 나라의 중산층 기준이라고 제시된 것은 중산층이 지녀야 할 마음의 태도와 관련된 것으로 경제적 기준과 무관한 정신적인 요소이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중산층 기준과 다른 나라의 중산층 기준을 비교하는 것은 ‘범주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무게와 길이를 비교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준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결과이고, 다른 나라의 기준은 교육이나 계몽을 목적으로 한 규범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다른 나라처럼 했다면 우리도 그들에 못지않은 더 멋지고 더 고상한 ‘중산층 기준’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고, 인류 공영에 기여해야 한다.”고 배우지 않았던가.   이렇게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비교에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이유는 ‘수저 계급론’이 등장한 우울한 우리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많은 사람이 ‘한국의 중산층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남루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면서도 우리 문화가 너무 소유 지향적이라는 반성과 함께 약간의 수치심을 동반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가 좋아져서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이 지금보다 몇 배 늘어나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면 이런 이상한 비교는 사라질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 나고’,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물론 無恒産해도 恒心하면 더 좋겠지만.